시간은 새벽 5시 17분을 지났다. 두시간 전에 누워서 잠들려는 노력을 하다가 거듭 실패를 하고, 결국은 글을 써보기로 마음 먹었다.
문득 파헬벨의 캐논이 듣고 싶어져서 음악을 재생했다. 어떻게 이렇게 매번 들을 때마다 아름답고 끊임없이 감동을 주는 음악이 있을까.
나는 매우 소중한 한 주를 보냈다. 지금에서야 '소중한' 한 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한 주동안 나는 가슴이 정말 많이 아프고 아팠다. 아픔의 원인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았던 것이 무엇보다 괴로웠다. 왜 아플까. 정말 아픈건지 아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픈건지 잘 모르겠다. 그냥 아프고 싶었나 보다.
지나간 사랑이 있었다. 나에게 그 사랑은 너무나도 큰 미안함과 인생에 짐을 안게 해준 사랑이었다. 결론적으로 그 사랑을 스스로 져버린 것은 나였고, 그런 사랑의 끝에 나 스스로 평생 미안함을 안고 살아가기로 다짐했었다. 사랑하지 않음 때로 돌이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올해 들어 문득 문득 그 아픈 사랑에 대한 상처가 자주 찾아와서 나의 가슴을 저며왔다. 생각했다. 내가 준 상처는 그 배가 되어 돌아오는 것이니까 당연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러기에 상처는 생각보다 컸다. 밤마다 가슴을 움켜쥐었고 쉽사리 그 아픔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리고 시간
언제나 시간만이 도움을 주었다. 한 번씩 강렬한 아픔이 지나가면 이내 아픔은 또 무뎌지길 반복했다. 하지만 다시 찾아 올 아픔이 숨어있는 반복이었다.
나는 매우 소중한 한 주를 보냈다. 이번에는 아픔에 정면으로 맞서기로 했다. 그저 계속 아파했다. 도대체 아프면 얼마나 아픈지 보자. 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너무 아팠다. 사랑에서 아프다는 건 그리워하는 걸 의미한다. 그리워지면 그리워질수록, 아파지고 아파졌으니까. 옛사랑이 떠오르는 걸 막지 않았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도록 내버려두었다.
감사하게도 아픔은 일주일도 채 나를 괴롭히진 못했다. 거기엔 시간.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시간이 모든 걸 낫게 해준다는 말에는 너무 많은 모습들이 생략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 시간동안 우리는 지옥을 다녀오기도 하고, 우주를 다녀오기도 한다. 그리고 길고 긴 여행에 지쳐 우리는 제자리로 돌아온다. 제자리도 돌아와 다시 일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여행은 어떤 모습이었든지 간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잡나보다. (아름다운 추억이라는 말을 취소해야겠다. 누구에겐 너무나 힘든 여정이었을지도 모르니)
아픔이 시들어가는 모습은 '고마움'을 닮아있다. 사람은 사람을 만난다. 그 만남이 우리 세상에서는 몇가지 '관계'의 이름으로 규정지어지고, 그러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남겨 아픔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아픔'이 오가는 관계에서도 결국은 '고마움'이 힘겹게 따라오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고마움
별다른 고마움이 아니라, 너와 내가 만나게 된 것에 대한 고마움. 너의 세상과 나의 세상이 만난 것. 만났었다는 것. 존재와 존재의 만남. 너는 나의 세상으로 들어왔었고 지금은 이처럼 나의 글로서 살아나고 있다. 이 글은 나의 것만이 절대 아니다. 나의 세상에 들러준 모든 존재들의 향연이다. 그런 고마움이다.
이 시점에서 순수에 대한 얘기
사람이 사람을 향해 가지게 되는 가장 순수한 감정은 '보고싶은'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니가 보고 싶었다. 만나서 이야기를 하든, 사과를 하든, 과거를 추억하든, 일단 보고 싶었다. '보고싶다'는 것은 당신이 존재하고 존재했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감정이다. 당신이 이 세상에 살고있든, 저 세상에 살고 있든 난 보고싶어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두가지의 사람이 있다. 보고싶은 사람과 보고싶지 않은 사람. 보고싶어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순수함'을 오래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니가 보고 싶었다. 우리가 공유한 시간은 아주 잠깐이었지만, 너는 나의 보고싶은 사람이 되었다. 보고싶지만 지금은 볼 수 없어서, 그것은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은 이내 아픔으로 그려진다. 즉, 아프다는 것은 보고싶다는 것이고, 보고싶다는 것은 너와 내가 그렸던 순수함을 간직한다는 것이다. 고마움.
시계는 6시를 가리키고 있다. 아침이 밝아왔다. 너는 언제 다시 나를 찾아올까. 나는 또 언제 너 때문에 아파할까. 혹시 그때가 찾아오면 나는 더 성숙해져서 그게 아픔보다는 고마움으로 널 기억했으면 좋겠다.
사실 이 글에서 나는 지난주가 소중한 한 주였다고 생각되는 이유들을 쓰고 싶었다. 결국 그 이유들을 충분히 잘 쓰진 못했지만 이 글 마저도 나에겐 소중하다. 지난 한 주가 소중했던 이유도, 내가 지금 이 글에서 그렇게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간다는 건 재밌다기보다는 참 신기하다.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해 본 것 중에 제일 신기하다. 살아가는게 제일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