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2 - 실패한다는 것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는 모든 경우를 '실패'라고 하자. 원하는 대학에서 떨어지고, 사랑하는 사람을 얻지 못하고, 평생을 이어가고 싶었던 사랑에 금이가는 그런 것들. 우리는 실패를 하며 살아간다. 실패의 연속이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마음 먹은대로 될리 만무한 것이다. 이것은 실패가 없으면 인생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우린 태어나고, 우린 자라고, 우린 배우고, 우린 원하고 바란다. 그리고 그 끝에 실패가 있다. 우린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 우리의 생각하는 하루는 우리가 원했던 것이 아니며, 우리가 생각했던 우리가 원했던 인생이 아닌 경우가 많다.
경제학에서는 이 모든 걸 간단한 개념으로 정리해주었다. '자원의 희소성' 무언가를 원하는 사람은 많은데, 그 수는 한정되어 있어서 그것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생긴다. 실패다. '자원의 희소성'은 비단 재화와 서비스에 국한되는 얘기는 아니다. 무한한 자원은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고, 공간이 한정되어 있고, 내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관심과 애정이 한정되어 있고, 우린 죽는다.
우린 죽는다. 우린 오래 살기를 원하지만 죽는다. 지금 당장 죽는 것은 아니지만 가까운 미래 혹은 먼 미래에 우린 모두 죽을 것을 알고 있다.
우린 모두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어하지만 죽게 된다. 하지만 '죽음'을 가지고 실패라고 얘기하지는 않는다. 낳음과 죽음은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태어난 모든 것은 죽는다. 밤하늘의 별들도 태어났다 사라지고, 우리 마음의 사랑과 미움도 커졌다 작아지고, 내가 있었다 없어진다.
죽어버려 사라지고 흔적조차 없어진다면 그 끝에는 어떤 의미가 남겨질까.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후에 우리는 어떤 의미를 찾을까. 의미가 남겨진들 그건 또 무엇을 의미할까. 어떤 의미가 남겨진 '죽음'만이 의미 있는 죽음이냐는 말이다.
애초에 의미는 없다. 시작부터 의미는 없었고, 죽음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다. 인류의 시작과 멸망, 나와 당신의 탄생과 죽음은 어떤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다. 모든 것의 존재와 그 시작과 끝에는 어떠한 의미는 없다. 때문에 '무언가의 끝'에서 어떠한 의미를 발견하려고 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 '의미 없다'.
우린 숱한 실패와 몇몇의 성공들이 함께 하는 인생을 살아가며 그 끝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가 실패로부터 아무런 교훈도,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했다면 당연하다. 의미는 없었으니까. 의미가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실패의 연속인 우리의 삶도 그리고 죽음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삶의 의미 == null;
우리들의 실패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 그러니 실패를 한다고 해서 상처를 받지도 의지를 잃지도 말자. 우리가 의미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면 매우 잘 살고 있는 것이다. 계속 실패하자. 계속 살아가자.